칼 융의 심리학 해설

관리자 0 32,750 2013.01.28 11:12
융의 심리학 해설과 나눔


이성 중심의 사고방식, 패러다임이 지배했던 시기에 프로이트는 합리적 이성이 아닌 무의식이 인간의 사고, 감정, 행위를 결정짓는 근원적 요인이라고 연구를 통해 학설,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이는 그 당시까지의 상식이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급진적이며 혁명적이었으며 기존의 가치체계를 뒤흔드는 역사적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후배격인 칼융은 (프로이트와 정확히 19살차) 프로이트와 무의식을 인정하는 근본적인 이론적 배경은 같았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이론을 전개하면서 서로는 결별하였고 대립적인 관계에 까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즉, 프로이트는 억압의 원인을 성적 외상이라고만 생각한 데 비해, 융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약사항에 의해서도 억압을 받는 경우가 지배적이며, 성적인 이유만이 억압의 원인이라고 한정할 수 없으며, 그 이외에도 다른 원인이 많이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성’ 문제만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듯해 신비주의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잘 이해 안 되는 부분도 많이 있었습니다. 반면, 융의 심리학은 좀 더 과학적인 논리에 근거해 전개 되는 듯 하여,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비해 이해정도가 더 잘 되었습니다.

융의 심리학에서의 퍼스낼리티(personality)라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존재, 인격, 개성을 말 하는 것입니다. 융이 퍼스낼리티에 관한 구조와 상호작용 등에 관해 연구한 이론은 현재의 심리학에 까지, 그리고 앞으로에도 계속 영향을 끼칠 만큼 대단한 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퍼스낼리티의 구조

사람의 퍼스낼리티에 관한 완전한 이론은, 세 가지 문제에 대해 대답해야 한다.

퍼스낼리티의 구조를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는 어떠한 것일까? 그리고 그 요소들은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을까? 또한 외계와는 어떻게 상호작용하고 있을까?

퍼스낼리티를 활동시키는 에너지의 근원은 대체 무엇이며 그 에너지는 여러 가지 구성요소들에 어떻게 분배될까?

개인의 일생에 있어서 퍼스낼리티는 어떻게 생기며 어떻게 변화할까?


1. 정신

정신이라는 이 개념에서 인간은 애당초부터 하나의 전체라는 것이 융의 근본사상임을 긍정하고 있다. 인간이 일생을 통해 해야 추구해야 할 바는, 타고난 전체성을 되도록 최대한으로 분화된 것을 일관성 있고, 조화롭게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뿔뿔이 흩어져 제멋대로 움직임으로써 갈등을 일으키는 즉 여러 체계로 분열하여 분해된 퍼스낼리티란 미성숙한 퍼스낼리티다. 정신은 가지각색이지만, 서로 관련되어 있는 수많은 체계와 수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에 있어서는 세 가지 수준으로 구별될 수 있다. ‘의식’, ‘개인무의식’, ‘집합무의식’의 세 가지를 말한다.

2.의식

개인이 처음 알고 있는, 마음의 부분은 의식뿐이다. 의식은 아주 일찍, 즉 출생 이전에 나타난다. 어린이의 의식적 주의는 융이 ‘생각’, ‘감정’, ‘감각’, ‘직감’이라고 부르는 네 가지 심적 기능의 적용을 거쳐서 나날이 성장해 간다. 어린이는 이 4 가지 기능의 전부를 같은 비율로 쓰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어떤 기능을 다른 기능보다 상당히 많이 쓴다. 이를테면 ‘사고적’ 타입인 어린이의 성격은, 뛰어나게 ‘감정적’ 타입인 어린이의 성격과 상당히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이 네 가지 심적 기능 이외에 의식의 지향을 결정하는 두 가지의 태도가 있다. ‘외향성’과 ‘내향성’이 그것이다. 외향적 태도는 의식을 외적, 객관적 세계 쪽으로 돌리고, 내향적 태도는 의식을 내적, 주관적 세계 쪽으로 돌린다.

개인의 의식이 타인으로부터 분화되어 개성화하는 과정을 ‘개성화’라고 부른다. ‘개성화’라는 말을 한 인간이 ‘개인’, ‘분할할 수 없는 것’, 즉 개별의 분할이 불가능한 통일체 또는 ‘전체’가 되는 과정을 가리키기 위해 쓰고 있다.

?나눔: 나는 어떠한 의식이 강하게 발달되어있는가? 유아기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경험에 비취어 생각해 봅시다.



(자아)

의식의 개성화 과정에서, 융이 ‘자아’ 라고 부르는 새로운 요소가 생긴다.

자아는 의식적인 지각, 기억, 생각, 감정으로 이루어져있다. 정신 전체 속에서 자아는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지만, 의식에 대한 문지기라는 매우 중요한 구실을 맡고 있다.

많은 심리적 자료들이 그 속에 넣어지지만 거기에서, 나에게 있어 완전한 자각의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아주 적다. 매일 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체험을 한다. 그 대부분은 의식에 도달하기 전에 자아에게 제거되어, 의식적으로 되지 않는다. 이것은 중요한 기능이다. 그것이 없으면 대량의 자료가 의식으로 몰려들어, 우리는 수많은 정보 속에 파묻혀 버릴 것이다. 심리적 자료의 취사선택에 의하여, 개별적 퍼스낼리티는 연속적인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자기가 어제의 자기와 동일한 사람으로 느끼는 것은 자아 덕분이다. 인간은 자아가 경험의 의식화를 허용하는 한계 안에서만 개성화를 달성할 수 있다.

?나눔: 나에게 의식되어지는 심리적 자료 중 지금 가장 흥미있고, 관심있는 자료는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3.개인 무의식

자아에게 인정받지 못한 경험들은 어떻게 될까? 정신에서 소멸되지는 않는다. 경험된 것이 소멸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자아에게 인정받지 못한 경험은 융이 ‘개인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곳에 저장된다. 마음의 이 수준은 자아에게 인접하여 있다.

개인무의식은 의식적인 개성화 또는 기능과 어울리지 않는 모든 심리적 활동과 내용을 받아들이는 저장소이다. 또는 괴로움을 주는 생각, 미해결의 문제, 개인적 갈등, 도덕적 갈등 등과 같이 일단은 의식적 경험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억압되거나 무시된 것들도 있다. 경험되었을 때 무관하다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보였기 때문에 잊혀진 것들도 적지 않다. 너무나 약하기 때문에 의식에 도달하지 못하는, 또는 의식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경험은 전부 개인무의식에 저장된다.

개인 무의식의 내용들은 보통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용이하게 의식에 접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많은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 이름들이 항상 의식에 머물러 있지는 않지만, 필요할 때 그것을 생각해 낼 수가 있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전혀 흥미 없는 것을 배우거나 관찰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 기억을 잊고 지내다가, 몇 해 지나서, 그것이 유용하게 될 때 개인무의식에서 호출되어 나온다.

(콤플렉스)

개인 무의식이 흥미깊고 중요한 특징은, 여러 내용들이 뭉치고 떼를 지어서 한 그룹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 융은 그것을 ‘콤플렉스’라고 불렀다. 콤플렉스를 계속 연구해 보았더니 그것은 퍼스낼리티 전체속의, 별개의 작은 퍼스낼리티 같은 것임이 은연중에 나타나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자립적이며, 그 자체의 추진력을 가지고 있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매우 강력하게 지배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가 무엇인가에 몹시 몰두해 있어, 다른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속된 말로 저 사람은 ‘장애물’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강한 콤플렉스의 경우 당사자는 모르고 있더라도, 남들은 용이하게 알아낸다.

하지만, 콤플렉스는 반드시 개인의 사회 적응에 방해만은 하지 않는다. 실제는 그 정반대인 경우도 있다. 콤플렉스는 현저한 업적을 위해 본질적으로 중요한 영감과 충동의 근원이 될 수 있으며, 실제로 종종 그렇게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인생의 마지막 몇 해 동안을 예술에 바친 반 고흐를 생각해 보라. 미에 사로잡힌 ‘무자비한 창작충동’은 예술의 기법을 개선하고 의식을 깊게 하며 넓혀간다.

맨 처음에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은 융은, 콤플렉스의 기원은 아동기 초기의 외적 체험에 있다고 믿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그러나 융은 이론을 전개하는 가운데 콤플렉스는 인간성 내에서 아동기 초기의 체험보다 훨씬 깊은 그 무엇으로부터 생길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다. 이 더 깊은 그 무엇이란 과연 무엇이겠느냐 라는 호기심에 끌려서, 융은 정신의 또 하나의 수준을 발견하여 그것을 ‘집합무의식’이라고 불렀다.

?나눔: 자신의 콤플렉스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가능성을 생각해 봅시다.


4.집합 무의식(집단 무의식)

마음은 환경에 의하여 엄밀히 결정된다는 입장에서 탈출하여, 진화와 유전이 신체의 청사진을 제공하는 바와 같이 정신의 청사진도 제공함을 밝힌 사람이 융이다. 집합무의식의 발견은 심리학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사건이고 융의 이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특정한 방법으로 생각하며, 느끼며, 지각하며, 행동하는 많은 소질을 가지고 있다. 이 소질들 또는 잠재적 이미지의 발달과 표현은 전적으로 개인의 경험에 의존해 있다.

집합무의식의 내용은 일정한 개인적 행동의 원형을 미리 규정하고 있는데, 개인은 태어날 때부터 그것에 따라야한다. ‘개인이 태어난 세계의 형태는, 이미 잠재적 이미지로서 선천적으로 그에게 갖추어져 있다. 잠재적 이미지는, 세계속의 부합되는 대상들과 동일시됨으로써 의식적 실재가 된다. 예를 들어, 집합무의식 속에 어머니의 잠재적 이미지가 존재해 있으면 그 이미지는, 어린이가 현실의 어머니를 지각하여 어머니에게 반응함으로써 신속히 명확한 꼴을 취한다. 우리가 어떤 것들을 쉽게 지각하고, 그것에 대하여 어떤 방법으로 반응하기 쉬운 까닭은 집합무의식에 그 소질이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 많으면 많을 수록, 잠재적 이미지가 표현되는 기회는 많다. 그러므로 집합무의식의 모든 측면을 개성화-의식화-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환경과 교육 및 학습의 기회가 필요하다.


(태고유형)

집합무의식의 내용들은 ‘태고유형’이라고 불리운다. 태고유형이라는 용어는 다른 종류의 것들이 그것에 따라 모조되는 최초의 모델을 뜻하고 있다. 같은 뜻의 말은 ‘원형’이다. 모든 퍼스낼리티에서 주요한 구실을 하고 있는 네 가지 태고유형 을 생각해보자.

a.페르소나

원래 ‘페르소나’는 연극에서 특정한 구실을 하기 위해 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킨다. 페르소나의 태고유형은 동일한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개인은 페르소나에 의해 반드시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성격을 연출할 수가 있다. 페르소나는 개인이 공적으로 보이는 탈내지는 겉보기이며, 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위해 좋은 인상을 주기를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것은 ‘대세에 순응하는’ 태고유형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페르소나는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 그것에 의해 우리는 못 마땅한 사람도 포함해서 남들과 우호적으로 잘 지낼 수가 있다. 그것은 개인적 이익과 업적을 가져올 수 있으며 사회생활과 공동체생활의 기본이다. 많은 사람들은 페르소나에 지배되어 있는 생활과, 심리적 욕구들을 채우고 있는 생활의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퍼스낼리티에 있어서 페르소나의 구실은 이로울 수도 있고 해로울 수도 있다. 개인이 자기가 하고 있는 구실에 지나치게 말려들거나 지나치게 사로잡혀, 자아가 오직 이 구실과 동일화하기 시작하면 그의 퍼스낼리티의 다른 측면은 밀려날 것이다. 이처럼 페르소나에 압도된 사람은 자기의 본성에서 소외당하게 되며, 지나치게 발달한 페르소나와 퍼스낼리티의 미발달 부분의 갈등 때문에 긴장상태 속에서 살게 된다.

어쨌든 페르소나는 인간 조재에 있어서 하나의 사실이며, 그 어떤 형식으로든지 표현되어야한다. 물론 신중하게 표현하는 편이 바람직하지만...

?나눔: 자신은 어떠한 모습의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페르소나가 나를 힘들게 했습니까? 혹은 기쁘게 했습니까?


b.아니마와 아니무스

융은 페르소나를 정신의 ‘겉면’이라고 불렀다. 그것은 세계를 향해 있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정신의 ‘내면’을 그는 남성의 경우 ‘아니무스’라고 불렀다. 아니마의 태고유형은 남성적인 정신에서의 여성적인 측면이며, 아니무스의 태고유형은 여성적인 정신에서의 남성적인 한 측면이다. 모든 사람은 남성도 여성도,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을 분비한다는 생물학적 의미에 있어서도 이성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남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여성에게 계속 노출함으로써 아니마의 태고유형을 발달시키고, 여성은 남성에게 노출함으로써 아니무스의 태고유형을 발달시켰다. 수세대에 걸쳐 함께 생활하고,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남성도 여성도 이성에게 적절히 반응하며, 이성을 이해하기에 유용한 이성의 특징들을 획득했다. 이처럼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태고유형은 페르소나의 태고유형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큰 가치가 있다.

흔히 우리는 일상에서 남성속의 여자다움과 여성속의 남자다움을 은연중에 경멸하는 경우를 발견하곤한다. 이 경멸은 계집아이 같은 소년(뱅충이)과 머슴애 같은 소녀(말괄량이)가 놀림감이 되는 어린이 시절에서 시작된다. 소년은 문화적으로 규정된 남성적 구실에, 소녀는 여성적 구실에 순응하도록 기대되어 있다. 그래서 페르소나가 윗자리에 서서, 아니마나 아니무스를 질식시킨다.

?나눔: 자신의 경험 중에 페르소나와 ‘아니마’ 내지 ‘아니무스’가 갈등을 일으킨 경우가 있었는지 생각해봅시다.


c.그림자

당자 자신의 성을 대표하며, 동성인 사람과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다른 태고 유형이 있는데, 융은 이것을 ‘그림자’ 라고 불렀다.

그림자는 다른 어떤 태고유형보다도 인간의 기본적인 동물적 본성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림자는 진화의 역사 속에 퍽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므로, 모든 태고유형 중에서도 아마 가장 강하며, 잠재적으로 가장 위험한 것이다. 그림자는 특히 동성의 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의 최선의 것과 최악의 것의 근원이다. 인간이 공동사회의 필수불가결한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그림자에 포함되어 있는 동물적 정신을 길들일 필요가 있다.

길들이는 것은, 그림자의 징후들을 억눌러 그림자의 힘에 대항하는 강한 페르소나를 발달시킴으로써 달성된다. 자기 본성의 동물적 측면을 억누르는 사람은 문명인이 되겠지만, 그때에는 자발성, 창조성, 강한 정서, 깊은 통찰의 원동력을 줄여야 하는 대가를 치루고 있다. 그는 본성의 지혜를 잃게 되는데 그것은 어떠한 학습이나 교양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보다도 깊은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림자’없는 생활은 천박하고 무기력한 것으로 되기 쉽다. 그렇지만, 그림자는 끈질기다. 그림자는 억압에 의해 간단히 굴복하지 않는다.

그림자는 기본적이고 정상적인 본능을 포함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소용되는 현실적 통찰과 적절한 반응의 원천이다. 종종 우리는 굉장한 결단과 반응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할 때 형편을 살펴서, 가장 적절한 반응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을 겨를이 없다. 이런 경우 의식 - 자아 - 은, 상황의 갑작스런 충격에 의해 어리벙벙해진다. 그래서 무의식 - 그림자 - 이 그 자체의 독특한 방법으로 상황에 대처하게 된다.

그림자의 태고유형은 인간의 퍼스낼리티에 충실한 3차원적 특징을 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생명력, 창조력, 활기, 힘 등은 이 본능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림자를 거부하면, 퍼스낼리티는 무미건조한 것으로 된다.

?나눔: 나는 나의 본능이 자아에 의해 주로 거절당하는 삶을 살았는가? 혹은 그 반대인가?


d.자기

태양이 태양계의 중심이듯, 자기는 집합무의식 속의 중심적인 태고유형이다. 자기는 질서, 조직, 통일의 태고유형이다. 자기는 모든 태고유형들과 콤플렉스 및 의식 속의 태고유형의 표현형태를 끌어당겨서 조화시킨다. 자기는 퍼스낼리티를 통일하여 그것에 ‘일체성’과 불변성의 감각을 준다.

모든 퍼스낼리티의 궁극적 목표는 자기실현을 달성하는데 있다. 이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라 매우 어렵고도 복잡한 문제이므로, 그것을 완전히 달성한 사람이 있었다 하더라도 매우 드문 경우이다. 융은 정신분석학의 연구자 입장에서 ‘예수’ 와 ‘석가모니’ 같은 위대한 종교적 지도자는 이 목표의 가장 가까이까지 갔다고 설명한다. 융이 지적하고 있듯이 자기의 태고유형은 거의 중년이 될 때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자기가 어느 정도 완전히 나타날 수 있도록 되기 위해서는, 퍼스낼리티가 개성화를 통해 충분히 발달되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자기 인식에 접근하는 고차원적인 방법으로는 진정한 종교적 체험에 의해 자기를 이해하며 실현하는 것이 있다. 동양종교에 있어서 동양인은, 이를테면 요가의 명상과 같이 자기임을 달성하는 의식적 수업에 의해 서양인보다도 용이하게 자기를 지각할 수 있다. 융이 종교에 관해 말할 때, 그것은 정신적 발달에 언급하고 있는 것이지, 초자연적 현상에 언급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완전한 자기의 실현을 이룩하기보다는 자기를 인식하려는 노력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자기실현은 어떠한 물질적인 대가를 치루어서 얻어지는 즉각적인 완성이 아니고 , 많은 양의 지식을 안다고 해서 얻어지는 단순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이일은 인간이 인생에서 부딪치는 가장 어려운 일이며, 계속적인 단련과 끈질긴 노력, 최고의 책임과 지혜를 필요로 한다.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만듦으로써, 인간은 자기 자신의 본성과 더욱 조화를 이룬 생활을 누릴 수가 있고 초조와 욕구불만을 느끼는 경우도 적어질 것이다. 자기 자신의 무의식 속의 그 기원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태고유형은 외적인 의식적 자아와는 전혀 다른 내적인 길잡이다. 자기는 인격을 규정하며, 조절하며, 좌우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퍼스낼리티를 성숙시키고, 그 지각능력을 높일 수가 있다. 자기의 발달을 통해 인간은 자기의 일생을 한층 더 자각하며, 파악하며, 이해하며, 지배하는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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